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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팬 커뮤니티 '광야 클럽' 시작…시범운영 뒤 9월 정식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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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타운 이미지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SM엔터테인먼트는 메타버스 브랜드 '광야'(KWANGYA)를 활용한 팬 커뮤니티 서비스 '광야 클럽'을 운영한다고 23일 밝혔다.'광야' 브랜드의 첫 서비스인 '광야 클럽'은 멤버십을 기반으로 한 팬클럽 서비스다.SM 소속 아티스트를 시작으로 여러 K팝 아티스트, 국내외 유명인사(셀러브리티) 팬을 위해 다양한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SM 계열사인 SM브랜드마케팅이 운영한다.회원은 상시 가입할 수 있는 무료 회원과 연간 유료 회원으로 나뉜다. 유료 회원으로 가입하면 향후 '광야' 브랜드로 선보일 여러 서비스를 이용할 때 특별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광야 클럽'은 다음 달부터 2개월간 시범 운영을 한 뒤 9월 정식으로 시작할 계획이다.정식 서비스에 앞서 이날부터는 NCT 드림과 에스파를 시작으로 SM 소속 아티스트의 팬클럽 유료 회원을 순차적으로 모집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티스트의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으로 확인할 수 있다.'광야'는 SM이 미래 엔터테인먼트의 핵심 가치로서 강조해 온 세계관 'SM 컬처 유니버스'(SMCU)를 상징하는 개념이다. 최근 NCT드림, 에스파 등 SM 소속 그룹 노래에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SM 관계자는 "'광야 클럽'을 시작으로 가상 국가 '뮤직 네이션 SM타운'(MUSIC NATION SMTOWN)의 시민권을 부여하는 디지털 여권 겸 멤버십 서비스 등 다채로운 형태의 새로운 미래 사업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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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 전 경제부총리 노환으로 별세…향년 94세[연합뉴스 자료사진](서울=연합뉴스) 홍지인 이정현 기자 = 한국 경제학계의 거목인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23일 새벽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정통 경제학자 출신의 고인은 교수와 관료, 정치인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아오며 분단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에 적잖은 족적을 남긴 인물로 꼽힌다.그는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고향인 강릉에서 영어 교사로 교편을 잡으며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그러다 6·25가 발발하자 육군에 입대, 통역 장교로 발탁됐고 이후 육군사관학교 영어 교수요원으로 선발된다. 당시 그가 가르친 육사 생도 중에는 고(故)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도 있었다.1957년 군을 떠나 미국 유학을 떠난 그는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1968년 서울대 교수로 강단에 섰다.그는 20년 동안의 서울대 교수 시절 '조순 학파'를 이룰 정도로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국내 경제학계의 거두로 꼽힌다. 국무총리를 지낸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고인과 함께 '경제학 원론'을 같이 쓸 정도로 가까운 제자다.그러다 육사 교관 시절 인연을 맺은 노태우 대통령의 발탁으로 1988년 경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은 데 이어 1992년에는 한국은행 총재에 임명된다.



정운찬과 조순(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동반성장국가혁신포럼 창립대회에서 조순 전 서울시장과 인사하고 있다. 2017.3.3 hama@yna.co.kr경제 관료의 길을 걷던 그를 정계로 끌어들인 사람은 당시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던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민선 서울시장에 당선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당시 '판관 포청천'이라는 대만 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끌 때여서 '서울 포청천'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특유의 흰 눈썹 백미(白眉)도 그의 상징이다.그는 민주당 분당 사태 이후 DJ가 정계에 복귀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지 않고 있다가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시장직을 사퇴하며 민주당 잔류파가 중심이 된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졌다.그러나 지지율이 기대에 못 미치자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전격 단일화했고 양당 합당으로 출범한 한나라당의 초대 총재를 맡았다. 1998년 재보선에서 강릉을에서 당선되며 국회에도 입성한다.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한 그는 탈당파를 규합해 민주국민당을 창당했으나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평당원으로 물러난 그는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했다.



1996년 당시 조순 서울시장[연합뉴스 자료사진]정치권을 떠난 이후 서울대·명지대 명예교수와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으며 사회 원로 역할을 해왔다.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 오전, 장지는 강릉 선영이다.유족으로는 부인 김남희 씨(92)와 장남 기송·준·건·승주 씨가 있다.geein@yna.co.kr, lis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