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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A 스토리
 
#01 VOCA 이야기
 

"50,60년대의 그 어려웠던 격동기를 맡아서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이 없이는 목회자의 길을 걷기 어려웠던 시절을 지나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그 후세대인 우리의 짧은 소견으로는 이 글을 쓴다는 것이 무척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시대에 목사님으로서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다하여 초기의 선교사들처럼 한 평생 선교사로서의 소명을 다하였기 때문입니다

"박목사님은 1930년 7월 29일 진주 반성이라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 곳에는 복음이 일찍 들어와 부친 박영환 장로님과 모친 주명희 권사님께서 복음을 접하여, 지금의 반성교회를 세우셨다. 목사님은 그 교회 안에서 자라면서 목회자의 꿈을 키워왔다. 목회자로서의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체험을 한 것은, 진해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박제복 목사님의 집회에 참석하였을 때였다. 목사님은 집회 중에 옆에 있는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하고 살아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진주고등학교를 기차통학을 하면서 또는 진주에서 반성까지 걸어 다니면서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하여 뒷산에 움막을 치고 굴속에서 금식기도를 늘 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졸업 후 고려신학을 다니면서, 20세에 함안읍 교회 전도사로서, 또 경북에 있는 구룡포교회를 전담하기도 하였다.
 
동시에 신학교를 다닐 때, 학교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금식하고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얼마나 열심히 읽었든지, 성경을 달달 외울 정도였으며, 한편 기도에도 늘 힘을 썼다. 기독교의 진리를 깨닫기 위하여 몸부림치던 때는 6.25의 공방전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을 였다.  그때 많은 외국교계 지도자들이 임시 수도였던 부산을 다녀갔다.  그때마다 목사님은 선교사들의 통역을 도맡아

서 해 주었다. 그 때는 부산지역에 신학도로서 통역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목사님은 선교사들과 늘 함께 천막대형집회를 하면서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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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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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야외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