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CA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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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처럼 번지는 현상을 뜻한다. 1998년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집권을 시작으로 원자재 붐을 타고 불어닥친 ‘1차 핑크 타이드’는 2010년대 중반 원자재 가격 하락과 부패 스캔들로 막을 내렸다. 이후 2018년 멕시코 오브라도르 대통령 당선을 기점으로 ‘2차 핑크 타이드’가 시작됐다. 이 흐름은 2022년 10월 브라 기금승인 질에서 룰라 대통령이 재집권하며 정점을 찍었다. 당시 중남미 6대 경제 대국(멕시코·브라질·아르헨티나·콜롬비아·칠레·페루)에는 모두 좌파 깃발이 꽂혔다. 하지만 그 정점은 오래가지 못했다. 불과 몇 달 만에 좌파 벨트 곳곳에서 도미노처럼 균열이 시작됐다. 시작은 2022년 12월 페드로 카스티요 당시 페루 대통령 탄핵이었다. 교사 출신으로 ing자산운용 청렴을 내세웠던 그는 측근 부패 의혹과 미숙한 국정 운영으로 민심을 잃었다. 2023년 11월에는 아르헨티나에서 극우 성향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좌파 페로니즘 세력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콜롬비아에서도 같은해 10월 지방선거에서 집권 좌파 연합이 완패했다. 칠레에서는 급진적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며 가브리엘 보리치 좌파 정부 영향력이 크게 아파트담보대출이자 흔들리고 있다. 칠레는 올해 11월 대선이 열린다.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극우 성향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집권 좌파 정부 지지율은 30% 수준이다. 2025년 8월 9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여성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와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가 악수하는 모습이 담긴 현수막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중남미 유권자들이 좌파에 등을 돌린 가장 큰 이유는 경제 실정과 부패 문제다. 핑크 타이드 시기 집권한 좌파 정권들은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며 표를 얻었다. 하지만 고질적인 무능과 부패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 시기 복지 확대를 지지했던 저소득 유권자층은 예상치 못했던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실업으로 생존 위기에 내몰렸다. 그러자 이념보다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약속하는 우파로 돌아서는 현상에 속도가 붙었다. 특히 이번에 대선을 치른 볼리비아 상황은 특히 심각했다. 한때 안정적이던 경제는 2020년 11월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 집권 후 무너졌다. 연간 물가상승률은 2023년 2%대에서 올해 7월 25%까지 치솟았다. 여기에 추운 고산 날씨를 버텨낼 연료 부족 사태까지 겹치며 국민 분노가 폭발했다. 볼리비아에서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30%에 달하는 유권자가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할 정도로 정치 혐오가 극에 달했다고 PBS는 전했다. 경제난과 함께 치안 불안은 우파 지도자들 부상을 이끈 핵심 동력이다. 엘살바도르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2022년 3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초강경 정책을 펼쳤다. 그는 취임 이후 8만명이 넘는 갱단 조직원을 체포하고, 4만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중남미 최대 규모 교도소 ‘테러리즘 격리 센터(CECOT)’를 신설했다.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이던 엘살바도르 살인율은 부켈레 집권 이후 급감했다. 전 국민적인 지지를 얻은 이 엘살바도르식 ‘철권 통치’는 이후 다른 중남미 국가 우파 지도자들 롤모델로 자리를 잡았다. 2025년 4월 4일 엘살바도르 테콜루카에 있는 테러감금센터(CECOT) 교도소에서 엘살바도르 군인이 경비를 서고 있다. /연합뉴스 아르헨티나 밀레이 대통령도 부켈레 성공 방정식을 그대로 따랐다. 아르헨티나 현지 매체 엘 나시온에 따르면 밀레이 행정부는 이전 좌파 정부가 사실상 방치했던 상습적인 도로 점거 시위부터 강력히 단속하는 ‘새로운 질서유지 프로토콜’을 도입했다. 또 마약 갱단 폭력이 심각했던 도시 로사리오에 군대를 투입해 이전 정부와 명확히 다른 강경 제압 노선을 택했다. 에콰도르 노보아 대통령 역시 취임 직후였던 2024년 1월 갱단이 교도소와 방송국을 습격하는 등 폭동을 일으키자 즉시 ‘국내 무력 충돌’ 상태를 선포했다. 이는 주요 갱단들을 ‘테러 조직’으로 규정하고 군대를 동원해 소탕 작전을 벌이는 것을 허용하는 조치다. 범죄 분석 기관 인사이트 크라임에 따르면 노보아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해 1월부터 4월까지 에콰도르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은 이전해 같은 기간보다 27% 줄었다. 노보아 대통령은 스스로 “일일 평균 살인 사건 수가 이전 정부 시절 26건에서 11건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외교 전문지 아메리카스 쿼터리는 “좌파 정부가 불평등, 빈곤 같은 범죄 근본 원인에 집중하는 사이, 유권자들은 당장 안전을 보장할 강력한 리더십을 원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이 2024년 5월 24일 에콰도르 키토 국회에서 의원들에게 연설을 마친 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념 지형 변화도 감지된다. 중남미는 종교적으로 카톨릭 비율이 높아 전통적 가족, 종교 가치를 중시한다. 이런 보수적인 정서에 좌파 정권이 강조하는 성별·성 정체성·과도한 정치적 올바름(PC) 등이 반감을 샀다는 분석도 나왔다. 중남미 유명 여론조사기관 라티노바로메트로가 202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스스로를 ‘우파’ 또는 ‘중도 우파’로 인식하는 응답자 비율은 2020년 13%에서 2023년 15%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좌파’ 또는 ‘중도 좌파’라고 답한 비율은 33%에서 25%로 뚜렷하게 감소했다. 보고서는 이를 ‘유권자들의 이념적 무게중심이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물론 중남미 전체가 오른쪽으로만 움직이진 않는다. 작년 멕시코 대선에서는 좌파 성향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후보가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브라질 룰라 대통령 역시 좌파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새로 들어선 중남미 우파 정부들은 이들 기존 좌파 정부와 외교 노선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룰라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 사이에서 독자적인 실리 외교를 펼치다 50% 관세 폭탄을 맞았다. 멕시코 셰인바움 행정부 역시 여전히 국경을 맞댄 미국과 연일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반면 우파로 정권이 교체된 국가들은 미국과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추세다. 이는 기존 좌파 정권들이 유지해 온 베네수엘라, 중국, 러시아 등과 관계에 지정학적 변화를 예고한다. 올해 대선에 나선 볼리비아 우파 후보들은 2008년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미국 대사를 추방하며 단절된 양국 관계를 17년 만에 복원하겠다고 공언했다.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가운데)이 2025년 8월 17일 볼리비아 비야 투나리에서 지지자들과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전문가들은 우파 재집권 이후 연착륙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경제 정상화 과정에서 추진하는 급진적 긴축 정책은 필연적으로 의회 반대와 사회적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볼리비아에서도 새 정부가 추진할 연료 보조금 폐지 등 고통스러운 재정 조정이 대규모 시위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현지 매체 안데스정보네트워크는 “두 우파 후보 모두 폭력적인 시위 진압을 위해 군경과 우익 민병대를 강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前) 브라질 대통령 사례처럼 강경 우파 내부 분열과 급진성이 보수 진영 전체 지배력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2022년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은 대선 패배에 불복하고 브라질 의회와 대법원을 습격해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우파 전체에 대한 역풍을 불러왔다. 마이클 시프터 인터-아메리칸 다이얼로그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즈(NYT) 인터뷰에서 “현재 중남미 우경화는 좌파에 대한 환멸에서 비롯된 반작용”이라며 “만약 새로운 우파 정부들이 경제 안정과 치안 개선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정치적 시계추는 언제든 다시 왼쪽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