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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VOCA본부 : 발자취
연도 기록
1950년대 초기 한국은 일제의 침략과 전쟁으로 인해 참혹한 시련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였던 때라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이 거리를 방황하고 있었고 이들을 위한 육아원, 영아원, 모자원, 맹아원, 농아원, 양로원, 나병촌등의 지원 사업을 중아선교회가 시행하였다. 특히 부산의 연산동지역은 교통상 시내와 격리된 빈민촌이라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은 비참하였고 가냘픈 목숨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굶주린 수많은 어린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당시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미국선교사(박성기목사) 신분으로 돌아와 보니 50년대 말의 한국은 빈곤으로 인해 너무나 어려운 현실이었고 당장 이들에게 시급한 것이 식량, 의복, 의약품등을 미국선교회에 요청하여 먼저 나누어주는 일을 하였다. 그러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미국 어린들 처럼 잘먹고 잘 살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꿈과 용기를 심어 주어야겠다고 생각되어 어떻게 하든지 우리 스스로 자생력을 길러주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되었고 우선 저들을 불러모아 “하나님께 나오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대학 설립 계획을 뒤로 미루고 어린이들을 위한 일반교육을 먼저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미국 선교본부와 협의하여 누구든지 오기만 하면 공부를 가르치겠다는 포스터를 붙였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몇몇 어린이들이 천막 속으로 모여들었다.
1960년대 1960년부터는 일반시민과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자 대형천막을 이용하여 전국적으로 미국선교사들과 함께 순회전도집회를 계속하였다. 그와 아울러 미국선교 본부에서 요청이 오면 미국, 캐나다, 영국, 덴마크, 스웨덴등을 다니며 집회를 계속하면서 한국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그 곳에서 모인 헌금으로 한국정부, 한국학생전도사업, 개척교회, 양로원, 재활원, 고아원, 나병촌등 수없이 많은 단체를 지원 해 준 것을 박정희 대통령께서 중아선교회 활동에 감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특히 우리사회에서 소외된 가난한 아동들의 정서함양에 기여하며 활발한 모금활동과 선교활동을 펼쳤다.
1970년대 1970년도 계속되는 수많은 학생전도집회와 일반시민전도집회를 계속하면서 한편으로는 음성나환자정착촌 지원사업과 사회복지법인 한서기독재단 정신박약아동의 재활을 돕기위한 애리원을 개원하여 지원해 주는 사업을 시작하였다.
1980년대 1980년도에 들어서면서 중아선교회가 지역사회를 위해서 더욱 활발이 활동을 전개하며 학생전도사업과 빈민구제와 저소득 학생장학금지급등을 하며 일반사회지원을 위해서 헌신의 힘을 다하며 중아선교회 산하 직원들이 모두 나서서 88올림픽과 아시안게임등을 통해서 자원봉사단을 조직하여 돕는 일에 힘쓰며 지역사회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

* 회 장 : SAMUEL S. PARK, Ph.D..D.D. (박성기목사)

1990년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서기독재단 애리원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이전하고, 학교 복음화를 위해서 학교이전사업과 신학대학을 세워 인제 양성에 최선을 다하며 전도의 전당으로 만들었다. 또한 계속해서 개척교회지원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중아선교회가 사회와 친화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많은 분야에서 활동을 개시하였다.
2000년대 중아선교회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국내의 많은 사회복지단체, 학생전도, 개척교회가 중아선교회의 도움으로 탄생하였고, 세계 각처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그 곳에서 지역사회를 위해서 무지를 퇴치하고 복음을 전하며 각종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