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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와 복음송 구별
  “찬송가와 복음송의 구별”  (로마서12:2, 야고보서4:4)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12:2).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야고보서4:4).

  오늘의 이 말씀은 기독교인들이 세속을 떠나서 출세상적으로 살자는 말씀이 아니다. 오로지 세상과 짝짓거나 세속문화 따름을 경계하고 적극적으로 이 세상을 인도해야 한다. 방향을 잃고 헤메는 세상에 건전한 내용을 심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교회가 과거의 일제 시대에는 세상을 앞장서서 이끌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세상에 주도권을 넘기고 세상의 풍습을 영입하고 그기에 발맞추어서 부흥을 열망한다는 결실의 일환으로, 그들이 열면 교회들도 열고, 그들이 노래하면 교회들도 노래하고, 그들이 벗으면 교회도 벗고, 그들이 춤추면 교회들도 따라 춤추는 세상이 되므로 현실의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부흥을 위해서 세상의 문화를 따라 해야 된다는 추세가 만연해 가고 있다. 시대변천에 따른 퇴폐음률의 음악을 교회가 받아들이므로 인해 사탄은 교묘하게 우리의 교회 속으로 파고든다.

교회음악의 본질이 무엇인가? 복음송의 이면으로 교회의 세속화를 추진하는 사이비성을 조속히 가려내야만 한다.

  하나님은 소리를 조직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 헬라 철인들은 소리의 원천을 막연하나마 신의 선물로 알았다. ‘로고스’, ‘로게이’는 ‘말하다’, ‘소리하다’ 이다.

인간은 소리를 조직하고 장단과 강약에 맞추어 음률을 낼 수 있다.

어거스틴은 소리가 도덕적 정서를 만족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음악은 감정순화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유대인의 오랜 포로생활에 시편의 음률로서 찬양했고, 스파르타가 힐테니우스에게 군가를 보급해서 사기를 진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음악의 힘이 과거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하며, 아드레나린(신장의 윗부분에 위치한 아드레날린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하나, 급박한 사태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됨. 혈압의 증가, 심장박동 및 골격근의 긴장을 증가시킴)의 분비를 촉진시켜서 신체조직의 긴장을 통해서 작용하며, 잡념들을 점유해서 일에 몰두하게 하며, 정서적 반응을 일으켜 활력소를 제공하기도 하며, 뇌세포를 활성화시킨다고 했다.

모차르트 곡은 수학의 천재가 되게 한다.

  교회음악의 비중도 어느 정도 주어야 한다. “찬송가냐? 복음송이나?“에서 앞서간 외국교회들을 따라가면서 복음송으로 야기되는 폐해상황은 성가인 줄만 알고 멋모르게 부르는 영향력이 앞으로 30~40년 후에는 드러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교회를 망치는 일인지, 신앙을 세우는 일인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우선 찬송가와 복음송을 분류하면,

  ‘찬송가‘는 기독교 교회음악이나 검증을 거친 聖음악으로 ‘공인’된 곡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과 역사하심과 놀라운 사랑의 덕을 기린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진리를 제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도록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찬송 부를 때 다같은 영감을 주며, 삶의 용기와 풍요를 주는 것이 입증되는 곡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그 곡을 들으면 전 세계 교인이 하나가 되게 한다.

‘복음송’은 검증되지 않은 곡이다. 곡조가 쉽고 경쾌하므로 불신자들도 접근하게 하는 데는 효과적이다. 다만 검증을 거쳐서 찬송으로 편집되기도 하고, 일시적인 ‘복음 유행송’으로 오래가지 않아서 탈락되기도 한다.

‘윌리암 하워드 돈‘(1832~1915, 미국 코넥티캇 주 태생의 사업가이며 찬송작가 2,000곡이 넘는 찬송곡을 작곡)의 17곡은 “죄짐맡은 우리 구주”(487장), “너희 죄 흉악하나”(187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219장), “돌아와 돌아와”(315장), “인애하신 구제주여”(337장), “십자가로 가까이“(496장) 등은 복음송에서 찬송곡으로 편입된 곡이다.

복음송은 前期와 後期로 나눈다.

  전기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1517년)부터 19세기까지를 말한다. 그사이에 많은 작가들이 만들었고 거의 다 건전하고 경건했다.

  후기는 한국, 중국, 일본 등이 자기 나라 말로 지었다. 자가로 만들면서 하루에 3,500여곡씩 쏟아져 나왔다. 예수 안믿는 사람들이 교회음악을 산업화시켜서 작곡가들을 고용했는데, 이들이 성경 속에서 나온 가사를 끼우기는 쉽다.

하나님 찬양이 아니므로 우리가 상인들의 수작에 농락되고 있다.

검증의 기준은 “정경 三合” 원리를 적용한다.

저자로 볼 때는 제1원리로 바울, 베드로, 요한이면 정경이듯이 사도, 선지의 감동 하에 쓴 글이어야 하고,

제2원리로 그 내용이 복음적이어야 하고,

제3원리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두 은혜 받을 때여야 한다.

예수 이후(바울이 A.D47~100년까지 글을 쓰고)에는 계시를 받았다면서 ‘베드로3서‘라 지칭하는 기록이 횡행하므로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칭한 부분이 있다. 교회음악에 적용된 적이 있다.

“누가 썼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한국초기에 찬불가를 쓴 사람이 복음성가도 썼다. 가사가 문제아니라 작곡이 큰 문제이다. 기독교 정서와 토양 속에서 써야 한다. 인간은 성장의 지적, 정서적 환경이 중요하다. 신령한 성가를 지음에 있어서 서양의 기독교 토양이 축적되므로 천주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서를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동양문화권은 5천년 역사 속에서 무속주의에 젖어서 자랐다. ‘아리랑’ 정서나 ‘두만강 푸른 물’에, ‘황성 옛터’, ‘신라의 달밤’의 정서가 흐르므로 이곡에다 예수 사랑을 쓰면 어찌 되겠는가?

‘신라의 달밤’이나 여러 옛 곡조가 재미가 나서 실컷 부르다 보니, 나중에는 찬송이 잘 안되는 경우를 당했다.

기어 변속이 잘 안되듯 성곡과 흘러간 옛 노래 간에 내 삶의 영향이 연결된 정서를 경험한 적이 있다.

  미국 군인이 6.25때 술에 취해서 길을 가다가 버려진 어린애기가 울며 누워있기에 안고 와서 막사에서 양육했다는 기사는 아무리 술 취한 상태에서라도 어려서부터 기독교적 토양에서 자란 탓을 부인할 수없다.

존 스콧트(스코틀랜드 태생의 여류 찬송 작곡가)가 작곡한 “하늘가는 밝은 길이“(545장)는 원래 스코틀랜드 풍의 민요곡에다 찬송시를 결합시켜 만든 것이다.  

재즈, 록앤롤, 웨이브로 표현되는 열매의 토양으로 변모된 것은 바로 게이문화, 혼합문화, 반기독적, 성적 문화들로서 이것들이 기업적으로 만들 가능성도 있다.

검증의 이유로는 음률이 종교 감정에 부합되지 않고 댄스홀에 사용하기 좋으며 값싼 감동으로 둔갑하려는 의도가 있다.

럿셀 콰이어는 병리적 심리적으로 매우 충격적이다. 유행가 조의 음률이 있어서 마치 유행가를 부르는 것 같다.

록뮤직화 하는 이방인 음악은 귀신의 음악이고 “락타스, 락타스”를 거꾸로 읽으면 “세이탄, 세이탄(사탄)”의 변형된 이름이 된다.

속학이 성학의 탈을 쓰고 있음을 주의하라.

크리스탼 록뮤직이라고 하나 록 음악은 세속음악을 대표하는 ‘음란할 淫樂’이다. 배후의 철학은 세속적, 인본적 사상이 깔려있다.

틴 에이저의 임신 책임은 레코드 회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제이시 젝슨 목사는 주장했다.

록가수들은 사탄을 찬양하는 가수들, 악령의 사역, 마약이나 혼음, 동성애의 반사회적 삶을 살 수 있다. 마약 없으면 살수 없다고 주장하기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영혼을 혼탁케 할 수 있다.

조지 뮤엘 칼럼니스트는 혼음과 변태성욕으로 전염병을 가져오게 했다고 한다.  

록 디스크의 75%는 게이가 조장한 것이고, 거의 모든 록 디스크의 디제이와 조명 담당자는 예외 없이 게이이다. 자기가 하는 노래를 자기가 듣지 못할 정도로 소음을 낸다. 하나님 사랑보다는 쇼이다.

템플 대학에서 라탈락 박사가 “록음악이 식물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한 결과, 어린 호박은 주름살이 지고, 토마도는납작해지면서 없어지고, 옥수수는 줄기가 굽어져서 자랐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얻었다.

반면에 왈츠나 세레나데는 모두 생기가 나고 싱그럽게 자라면서 윤기가 나서 알찬 열매를 맺었다고 했다.

죠헨 목사는 “록음악에 숨겨진 사탄의 계략” 제5장에서 레코드판을 거꾸로 돌리면 반도덕적 가사가 나온다고 했다.

비틀즈가 취입한 화이트 앨범의 Revolution No.9에서 “turnly on backman“은 ”죽은 자여 나를 흥분시켜라“는 시체와의 섹스를 권장하는 소리가 되어 들린다.

”fire on hire에서는 “예수는 지옥으로 꺼져라“고 들린다. 음악을 되돌릴 수 있지만 시간은 돌릴 수 없다.

“leg on  아칸스”는 “세이탄, 세이탄! 그야말로 하나님이다. 대마초를 피워라“.

“게임을 즐겨라“에서는 “나의 사탄의 음악을 사랑한다“고 들린다.

롤링스톤은 “내나 너를 사랑한다”.

마이클 잭슨의 “Be's it"에서는 ”나는 내속에 있는 사탄을 믿노라. 나는 내속에 있는 사탄을 믿노라”고 들린다.

pop, Jazz, wave, rock &roll은 오지! 즉 우상숭배시 약초를 먹고 혼음(‘오지’)이라고 한다.

그런 마귀 음악을 교회에서 예수사랑의 말로 끌고 들어와야 하겠는가?

세상의 세속문화가 온갖 감언이설로 교회 문을 열어 제치고 있다. 진리가 아니면 바벨탑처럼 무너질 것이다.

99년 8월에 뮤직 캠프에서 젊은 출연자들의 웨이브 춤과 “즉흥교, 랩교, 우리를 믿으라“는 악귀들의 아우성치듯이 부르는 생방송을 들었다.

  목회자가 될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교회가 앞장서서 충분한 철학을 가지고 교회 사역에 임해주기 바란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좋아하는 풍조에 따라가거나 젖어드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주기 바란다.

왜 성인 출석 500명에 주일학교는 100명도 안되는가? 세속문화를 따른다고 부흥되겠는가?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죄인이다.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회개하라“고 외치는 목회가 되어야 내적으로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