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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니엘운동으로 순수복음 지켜 나가자”
“브니엘운동으로 순수복음 지켜 나가자”  

우리 브니엘교단은 1900년대 초 미국에서 조직된 중아선교회 유지재단에 그 연원(淵源)을 가진다. 한국에서는 1958년 7월 부산 연산동 천막집회에 이은 브니엘교회의 설립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 후 전도, 교육, 구제 등 중아선교회의 3대 지표를 따라 계속된 천막집회와 전도인 파송 특히 필요한 지역에 교회를 설립하였다. 브니엘 중.고등학교를 통한 본격적인 학원 전도를 하였고 피난민 구호와 고아원, 양로원을 통한 봉사사역으로 지금까지 50여년 동안 활발하게 선교하여 왔다.
  이러한 전도사역은 1987년의 (독)노회 구성과 1994년의 총회 조직으로 말미암아 발전적으로 승계되어 왔다. 지금은 전국에 100여개처의 교회수와 교세를 가진 중견교단으로 육성되고 있다. 앞으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더 크게 발전하고 확장되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하겠지만 이러한 브니엘 총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차제에 각자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첫째, 브니엘교단은 여타의 다른 장로교회들 같이 이탈되거나 분열되어 갈라져 나온 교단이 아니다. 처음부터 순수한 복음정신으로 형성된 교단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의 공동체 의식으로 뭉쳐져 있어야 한다. 교회 기본재산의 법인화와 교역자 연금적립 등의 주요 보수사항은 그런 의미에서 회원의 이탈방지와 동질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따라서 이 일을 더 구체적이며 긍정적으로 연구, 정착시킬 필요성이 있다. 이와 같은 교단 창설기간에 제시된 보수사항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가족, 하나의 공동체 의식은 역사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더 견고히 결속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교단의 신학기조는 철저한 정통개혁주의 신학을 견지해야 한다. 1900년 초 설립된 미국의 중아선교회는 침례교, 감리교, 장로교 등 많은 다양한 교파의 인사들로 이사진이 구성된 초교파적 선교단체였다. 신학의 기조나 방향도 범(汎)복음주의적 경향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국 브니엘교단은 한국의 신학적 경향을 감안하여 중아선교회로부터 허락받고 대한예수교 장로회 브니엘 총회로 출발하게 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 브니엘교단의 신학기조는 정통개혁주의 신학을 근간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개혁주의의 재흥(Revival of the Reformation)이라는 기치아래 초대교회의 순수한 신앙전통을 모범으로 하여 개혁주의 정통신앙을 끝까지 견지해 나가야 한다.

  셋째, 본 브니엘교단의 선교 방향은 다양한 방면으로 전방위적(前防衛的) 전진자세를 취하여야 한다. 미국 중아선교회의 선교방법은 매우 다양하였다. 가령 대중천막집회와 180개이상의 방송채널을 통한 미디어전도, 개인전도와 학원전도, 고아원, 양로원 그리고 극빈자 구호전도, 전쟁구호사업 등 방대하였다. 심지어 신문, 잡지, 출판 등 각종 미디어를 통한 전도에도 주력하였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정리하면 전도, 교육, 구제 등 3대 지표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이러한 중아선교회의 3대 지표가 오늘 한국 브니엘교단의 사역지표로 그대로 계승되어야 한다. 특히 해외선교는 브니엘교단이 가진 태생적 과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의 전하는 것은 옛것이나 전하는 방법은 새로운 것이다.」라는 초기 브니엘 교회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채널을 통한 전방위적 전도를 해야 할 것이다.

  넷째, 그러나 브니엘교단의 선교에 있어서 우선순위를 국내 개척교회 설립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우리 교단은 다른 장로교회들에 비해 비교적 늦게 시작되었다. 20여년동안 100여교회로 성장했다면 그동안 많이 성장한 셈이다. 그러나 명실공이 한국에서 중견교단이 되려면 교세가 더 확장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개척교회가 더 많이 설립되어야 한다. 물론 일각에서는 신학 졸업하기 전에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고 염려하는 목소리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우(愚)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자립교회마다 연(年) 1개 처 이상씩 교회개척을 각오할뿐더러 노회와 총회단위의 정책적 교회설립을 계획하고 실천한다면 앞으로 10년 내 500여개의 교회들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전 교단이 이런 목표 아래 기도하며 일하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교단을 크게 축복해 주실 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다섯째, 브니엘교단 제 2세대의 사역은 계승과 체계화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성경의 구속역사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개척과 이삭의 계승, 야곱의 주관적 결단은 종교개혁의 역사에서도 같은 모양으로 나타났다. 루터의 투사적 개척과 칼빈의 성경적 체계화 그리고 요한 낙스의 장로교체제로서의 정착으로 발전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교단 창설자 박성기 목사와 함께 동역했던 1세대 사역자들이 잘 닦아둔 터전위에서 2세대 교단 지도자들은 앞서 1세대 사역자들의 사역전통을 고치려하지 말고 잘 계승해야 한다. 계승과 체계화를 통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2세대 지도자들의 중요한 과업임을 명심해야 한다. 행여나 제 3세대의 몫을 가로채는 일도 없어야 한다. 자신의 세대에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하겠다.

  여섯째, 총회운영 리더십의 성격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교단 창설자가 80노구를 이끌고 모든 일에 견인차 노릇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총회장에게 거는 기대치도 지나치게 과장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지금까지의 리더십 형태가 대폭 수정되어야 한다. 각 부서에 속한 업무들은 해당부서에서 처리하도록 권한이 이양되어야 한다. 물론 일 처리의 원칙과 내규들을 각 부서마다 정하여 놓고 어지간한 일들은 그 내규와 원칙에 따라 처리되어야 한다. 교단 창설초기부터 자문위원회를 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뜻있는 일이었다. 교단의 정체성 유지와 중요한 사항들에 대한 조언과 심지어 교단의 발전을 위한 씽크탱커(Think tanker)의 역할을 감당케 하는 데에는 자문위원회의 기여도가 심대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본정신에 충실하면서도 비전을 제시하고 또한 낙오자까지 끌어안고 나아가는 목자적 리더십이 어느 때 보다 더 요청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브니엘교단은 우리 시대의 눈에 보이지 않는 독소인 실용주의의 적용을 경계해야 한다. 18세기의 영국 사회는 산업혁명의 여파로 도시빈민들의 생활에 극심한 타격을 주었다. 이럴 때 교회는 도시 빈민층의 사람들에게 원색적인 복음전도로 영혼구원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일부교회들은 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는 실용주의 방법을 도입하여 교회를 극장화(劇場化)하는데 까지 나아갔다. 이로서 교회의 세속화가 가속화되었고 급기야 교회의 영적 생명이 심각하게 침체되어갔다. 이와 같이 오늘의 한국교회도 그와 방불한 실용주의 방법을 동원하여 많은 문제들을 야기 시키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세대를 전도하기 위해 포스트모더니즘적 방법을 동원하는 새로운 실용주의가 교회를 세속화 시키고 있다. 실용주의 방법의 적용은 마침내 교회의 영적 생명을 침체시키는 독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최소한 우리 교단 교회들만큼은 실용주의의 도입을 경계해야 한다. 미련할 정도의 십자가 복음을 원색적으로 증거하므로서 교회의 영적 생명력을 진작시켜야 할 것이다.

  1909년 중아선교회가 설립된 당시의 미국은 자유주의 신학 사조의 영향 때문에 영적으로 몹시 메말라 있었다. 이런 영적 형편 속에서도 비조직적이며 자발적으로 시작된 것이 브니엘운동이었다. 이와 비슷한 형태로 오늘날 21세기의 한국교회는 제3의 운동, 뉴에이지 운동의 영향을 받아 극도의 세속화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 상태는 1900년대 초 미국의 상황보다 더 심각하다고 하겠다. 이러한 때 다시금 한국에서 일어난 브니엘운동은 한국과 전세계에 새로운 영적 불을 붙여 나가야 한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문화적 운동이라는 미명하에 서서히 들어와 한국교회 전체를 썩혀 들어가고 있는 제 3의 운동의 정체를 밝히고 그들에게 순수한 복음을 역전도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에 전력투구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21세기의 역사적 기로에 서 있는 브니엘 교단이 자기가 처한 시대를 앞장서 이끌고 나갈 푯대임을 명심해야 하겠다.